이 포스트는 예전에 이글루스에 썼던 글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date of the original post: 2012-02-28)
Q. 액티피드, 판피린에프, 화콜, 콘택600 의 공통점은?
A. 나 어렸을 때 많이 먹었던 약..이라고 하면 혼나겠지 -_- 그러나 여기에 내가 어렸을 때 알레르기성 비염과 코감기를 달고 살았다는 사실을 추가하면..? 정답은 항히스타민제. 위의 네 가지 약들은 성분과 함량과 제형이 사뭇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항히스타민제를 포함한다.
다들 항히스타민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들 계시는지? 아마도 이름은 익히 들어봤을 테고, 콧물 멈추게 하는 약 내지는 알레르기에 먹는 약 정도로 알고 있으려나? 히스타민 억제제라는 것쯤 이름에서 유추해냈을런지도. 뭐 다 맞는 말이다. 여기서 굳이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 일단 히스타민이 뭔지, 어떻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지부터 이해를 좀 해봐얄 일이다.
히스타민histamine이란 우리 몸에서 합성되는 일종의 화학 물질이다. 필수 아미노산인 히스티딘에서 카르복실기 하나를 떼어내면 히스타민이 된다. 필수 아미노산, 우리 몸에서 합성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음식으로 섭취해줘야한다는 바로 그 필수 아미노산 중 하나가 히스티딘이다. 히스타민, 히스티딘. 이름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비슷하다.
폐나 기도점막, 피부처럼 우리 몸의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곳에는 mast cell이라는 면역세포가 많이 살고 있다. 이 mast cell이라는 녀석들은 백혈구랑 생긴것도 비슷하고 하는 일도 비슷하지만 백혈구처럼 혈액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폐나 피부와 같은 조직 안에 짱박혀있다는 점에서 백혈구 아닌 백혈구라 할 만하다. 히스타민은 주로 이 mast cell 안에서 만들어져서 과립granule 형태로 차곡차곡 쌓여있게 된다.
그럼 알레르기 반응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예를 들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의 경우, 꽃가루를 들이마시거나 해서 이것을 IgE(immunoglobuline E, 일종의 항체임)가 인식한 후 mast cell에 가 붙으면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놨던 히스타민이 뿜어져나오게 되는데, 그러면 이 히스타민들은 해당 리셉터receptor에 가서 붙어서 콧물이나 가려움같은 흔한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쓰고보니 여기서 잠깐, 리셉터가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 갈길이 멀구나.
히스타민과 같은 쬐끄만한 화학물질들은 대부분 자기랑 꼭 맞는 리셉터에 가서 결합함으로써 생리작용을 일으킨다. 흔히 이러한 화학물질을 열쇠, 리셉터를 자물쇠로 설명하곤 한다. 짝이 맞아야 된다는 말씀. 예를 들어 히스타민은 노르아드레날린 리셉터도 아니고, 아세틸콜린 리셉터도 아니고, 세로토닌 리셉터도 아닌 히스타민 리셉터에만 가서 붙을 수 있다.
이러한 리셉터들은 우리 몸 이곳저곳에 다양하게 분포하며 그 이후 일어나는 생리작용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히스타민이 혈관내벽에 있는 히스타민 리셉터에 가서 붙으면 혈관이 확장되고 투과성이 높아져 충혈이 일어나고(코막힘) 기관지에 있는 히스타민 리셉터에 가서 붙으면 기관지가 수축해서 기도가 좁아지고(anaphylaxis) 코점막에 있는 히스타민 리셉터에 가서 붙으면 점액분비가 늘어나고(콧물 쥘쥘) 등등.
결국 알레르기성 비염의 각종 불쾌한 증상들이 다 히스타민 때문이라는 얘기니까, 눈물 콧물을 멈추려면 히스타민을 막으면 될일이다. 항히스타민제란 히스타민 리셉터에 히스타민 대신 붙어서 히스타민의 반응을 방해하는 약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액티피드 시럽에는 트리프롤리딘triprolidine이라는 항히스타민제가 들어있고 판피린에프 액과 화콜에프 캡슐, 콘택600 캡슐에는 클로르페니라민chlorpheniramine이라는 항히스타민제가 들어있다. 물론 종합감기약인 판피린에프 액과 화콜에프 캡슐에는 항히스타민제 말고도 타이레놀과 같은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 들어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소위 말하는 감기약이라는 것은 콧물, 재채기, 기침, 두통, 열 등등 감기의 여러가지 증상들을 완화하기 위해 먹는 것이지 감기를 ‘치료’하는 약이 아니다. 감기는 일반적으로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인데 원래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보다 죽이기가 훨씬 까다롭기 때문에 치료약이 별로 없고, 흔히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바이러스rhinovirus 등은 그리 큰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치료할 필요도 없다. 다만 감기에 걸렸을 때 따라오는 여러가지 증상들이 매우 괴롭기 때문에 항히스타민제나 해열진통제 등을 먹어서 그러한 증상을 경감시키는 것 뿐이다.
화콜이나 콘택600 따위의 감기약을 먹고 졸려서 헤롱거려본 경험이 있으신가? 이것이 바로 항히스타민제의 가장 흔한 부작용이다. 히스타민 리셉터는 중추신경계(뇌)에도 존재하며 수면을 조절하는데 알약이나 캡슐, 물약 등 먹는 약들은 대부분 혈액을 통해 온몸을 순환하기 때문에 항히스타민제가 중추신경계로 들어가서 졸음 등의 중추신경계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실 뇌에 혈류를 공급하는 뇌혈관은 다른 혈관들과는 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웬만한 의심스런 물질은 잘 통과시키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소중하니까요. 이런 특징적 구조를 BBB(blood brain barrier)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항히스타민제들은 이 BBB를 쉽게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종합감기약의 설명서를 잘 읽어보면 졸음 이외에도 다양한 다른 부작용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항히스타민제가 히스타민 리셉터에 대해 100% 선택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항히스타민제는 무릇 히스타민 리셉터에만 가서 붙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아세틸콜린 리셉터와 같은 엄한 리셉터에 붙어서 엄한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 아세틸콜린에 의해 매개되는 소화와 같은 생리현상이 쓸데없이 방해를 받아서 소화불량이나 변비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감기약(항히스타민제)의 제일 심각한 부작용은 졸음이다. 식후 30분에 먹으라고 써있긴 한데 아침먹고 감기약을 먹으면 하루종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설명서를 잘 읽어보면 졸음이 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자동차나 기계류의 조작을 피하라고 아주 친절하게 쓰여있다. 이게 다 약물이 BBB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BBB를 통과하지 못하게 만들 순 없는걸까? 없긴 왜 없겠나. 약물의 화학구조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찾은 끝에 BBB를 통과하지 못하게 만든 약물이 2007년에 드디어 FDA 승인을 받았으니 그것이 바로 세티리진cetirizine, 바로 지르텍zyrtec이다. 판피린에프 같은 기존의 항히스타민제보다 졸음이 오는 부작용이 훨씬 덜하다고 한다. 이처럼 BBB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중추신경계 부작용을 현저히 줄인 항히스타민제를 2세대 항히스타민제라 한다.
여태까지는 마치 항히스타민제가 몽땅 감기약인 것처럼 썼는데 그렇지 않다. 버물리에스 액에도 디펜히드라민diphenhydramine이라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들어있다. 물론 이건 바르는 약이니까 1세대 항히스타민제라 하더라도 졸음이 온다던가 하는 부작용은 없다. 모기같은 벌레에 물리거나 쏘이면 독소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서 붓고 가렵게 되므로 항히스타민제를 발라주어 가라앉히는 것이다.
또한 여태까지는 마치 히스타민 리셉터가 한가지 종류인 것처럼 썼는데 그렇지 않다. 앞서 설명한 모든 반응들은 H1 receptor를 매개로 일어나는 생리현상들이다. 사실 항히스타민제들은 꽤나 오래된 약들이어서 이 약들이 개발되고 쓰이기 시작한 무렵에는 히스타민 리셉터에 다양한 종류가 있는 줄 몰랐다. 그러나 나중에 위장 점막에 다른 종류의 히스타민 리셉터가 존재하며 위산 분비를 매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H2 receptor이다. 이 H2 receptor를 막는 항히스타민제가 바로 시메티딘cimetidine(타가멧 정)이나 라니티딘ranitidine(잔탁 정) 등의 유명한 위염 약들이다. 그러나 훗. 이런 H2 억제제 따위의 약효란 PPI(proton pump inhibitor)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한 것이니.. 위염/식도염에 쓰이는 약물과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