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트는 예전에 이글루스에 썼던 글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date of the original post: 2012-03-16)
일단 소화에 대해 좀 설명해야겠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소화관(입-식도-위-십이지장-소장-대장)을 거치면서 물리적 소화와 화학적 소화를 거치게 된다. 여기서 물리적 소화란 입으로 음식물을 씹는 것, 장관 운동으로 음식물을 부수고 섞어 내려보내는 것 등을 말하고 화학적 소화란 각종 효소에 의해 음식물이 분해되어 흡수 가능한 형태가 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지방은 지방산으로 탄수화물은 단당으로 분해된 후에야 흡수되어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각종 효소들은 침, 위액, 췌장액 등 소화액의 형태로 생성 분비된다. 예를 들어 침에는 아밀라아제amylase(탄수화물 분해), 위액에는 펩신pepsin(단백질 분해), 췌장액에는 트립신trypsin(단백질 분해), 리파아제lipase(지방 분해) 등이 들어있다. 쓸개즙bile은 소화효소는 없지만 지방 분해에 중요한 기능을 하므로 일종의 소화액이라 하겠다.
이러한 소화과정이 어떤 이유에서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소화불량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흔해 터진 소화제는 도대체 어떻게 소화불량을 해결하는 걸까? 소화제, 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국민소화제들-베아제, 훼스탈, 활명수-에 대해 알아보자.
개인적으로 평생 가장 많이 먹은 약 중 하나인 활명수부터. 활명수의 성분은 사실 나도 이참에 처음 찾아본 건데, 음.. 간단히 말하면 대량생산된 한약이다. 생약성분 소화제, 부채꼴을 찾아주세요 뭐 이렇게 광고하는 그대로다. 궁중에 전해오던 비방을 조선말에 상업화한 것이라고 한다. 소화제로서의 원리는 일반적으로 쓴맛이 나는 것을 먹으면 소화가 촉진된다고 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유럽에서도 쓴맛이 나는 허브를 섞어서 소화제를 만든다. (대부분 그냥 차로 마시는 것 같긴 하지만.)
베아제나 훼스탈은 각종 소화 효소들을 알약형태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약들은 뭐 크게 질병의 치료를 위한 약이라기 보다는 소화를 도와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 이제 제산제나 소위 위염치료제라고하는 좀 더 전문적인 위장약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위장의 해부생리학적 특징을 간략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위장내벽에는 몇가지 특별한 세포들이 존재한다. HCl(그렇다, 염산이다!)을 분비하는 parietal cell, 펩신의 전구물질인 펩시노겐pepsinogen을 분비하는 chief cell, 소화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는 가스트린gastrin을 분비하는 G-cell, 히스타민histamine(지난번 포스팅을 참조하시라)을 분비하는 H-cell, 점액을 분비하는 세포 등이 그것이다.
parietal cell이 분비하는 염산 때문에 위액의 pH는 대략 2 정도 된다. 중성인 물의 pH는 7 이다. pH가 logarithmic scale이라는 점에 비추어 pH 2 라는 것은 물보다 10^5 즉 십만배 강한 산인 셈이다. 위액 1 mL를 물로 중화시키려면 물 100 L가 필요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설명이 전혀 와닿지 않는 독자들은 그냥 식초정도의 산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1.0 M acetic acid의 pH가 2.5 정도임)
이렇게 강한 산으로부터 위벽을 보호하기 위해 위벽 안쪽에는 1mm 정도 두께의 점막층이 형성되어 있다. glycoprotein(당과 아미노산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분자)과 물이 섞인 끈적한 젤같은 점액이 장벽으로 작용해서 위액이 점막층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점액 자체가 약간의 알칼리성을 띠므로 산을 중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여기서 잠깐,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인 펩신이 왜 위장 자체를 분해하지 않는거지? ..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 사람, 없을거야 아마..-_-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지라도 꿋꿋하게 설명하련다. 실제로 췌장절제술을 받은 환자(나!)는 수술 이후 췌장액이 복강으로 새어나오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췌장절제부위에서 강력한 소화액인 췌장액이 복강으로 새어나오면 복강이 소화-_-되어서 녹아내리게 된다.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긴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얀거탑에 나온 적이 있다. 차인표가 집도한 췌장절제술이 완벽하게 끝난 것처럼 보였는데 김명민이 췌장액이 샌다고 우기고 결국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피를 약간 묻힌 거즈에 drainage 한방울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는데 핏빛이 싸악 사라지는.. 차인표가 x되는 뭐 그런 장면이었음)
위장내벽의 chief cell은 펩신 자체가 아니라 자체로는 효소 기능이 전혀 없는 펩시노겐이라는 전구물질을 분비한다. 이 펩시노겐은 산성 환경에서만 펩신으로 바뀌어 효소기능을 갖게 된다. 즉 알칼리 환경인 위장 내벽에서는 효소기능이 없다가 위액이 있는 위장 안으로 분비된 후에라야 효소기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췌장이 췌장액에 의해 소화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단백질 분해효소인 트립신trypsin은 췌장에서 트립시노겐trypsinogen의 형태로 분비되어 소장 안에서 비로소 트립신으로 바뀐다. 이런식으로 우리 몸은 스스로 만들어낸 소화액에 의해 소화되는 참사를 방지한다.
아..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다.
다시 위장약으로 돌아와서, 위장내벽은 한편으로는 강한 산과 소화효소를 생산하고(aggressive factors) 한편으로는 이로부터 위장내벽을 보호하기 위해 알칼리성 점액을 분비함으로써(protective factors) 균형을 유지한다. 이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나 잘못된 식생활로 위산 분비가 너무 많아지거나, 아스피린 복용 등에 의해 점액질 줄어들게 되면(아스피린은 점막 형성을 촉진하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e의 생성을 막는다) 점막의 보호기능이 불충분하게 되므로 위벽이 위액(산과 펩신)에 의해 손상을 입게 된다. 이것이 보통 말하는 위염이고 심해지면 위궤양peptic ulcer가 된다. 여기서 더 심해지면 위천공perforation(위장에 구멍이 뽕)이 될 수 있고 그러면 음식물과 함께 위액이 복강으로 새어나가게 되고..역시 그 이후는 각자 상상에 맡긴다.
따라서 위염의 치료는 결국 aggressive factors와 protective factors 간의 균형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알칼리성 물질을 먹어서 과다한 위산을 중화시키는 것이다. 겔포스 같은 제산제의 원리다. 알루미늄염이나 마그네슘염을 쓰는데 알루미늄의 경우 변비를 일으키고 마그네슘은 설사를 일으키므로 흔히 이 둘을 섞어서 쓴다.
parietal cell이 염산을 분비하는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약들도 있다. 그러려면 일단 parietal cell이 어떤 경우에 염산을 분비하는지를 알아야겠지. 밥을 먹으면 위에서 가스트린gastrin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parietal cell에는 이 가스트린에 대한 receptor가 있어서 가스트린이 여기에 붙으면 소화를 시켜야하는 순간임을 깨닫고 염산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잖아? 그런데 히스타민histamine 또한 이와 비슷하게 parietal cell이 염산을 분비하도록 하는 신호로 작용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 그런데 일반적인 항히스타민제는 위산분비억제에 아무 효험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반적인 항히스타민제가 작용하는 리셉터와는 좀 다른, 새로운 리셉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바탕으로 연구한 끝에 parietal cell에는 H2 receptor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하야 H1 receptor에는 붙지 않고 H2 receptor에만 붙어서 효과적으로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약이 개발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시메티딘cimetidine(타가메트 정), 라니티딘ranitidine(잔탁 정) 등 유명한 위염치료제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사랑받던 시메티딘과 라니티딘은 PPI에게 위염치료제 최강자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PPI(proton pump inhibitor)는 parietal cell이 염산을 분비하도록 하는 신호 단계에서 위산분비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염산을 실제 분비하는 구조 자체를 망가뜨림으로써 해당 parietal cell의 염산분비 기능을 영구적으로 떨어뜨리는 약물이다. 가스트린에 의해 신호를 받든, 히스타민에 의해 신호를 받든 또는 아세틸콜린에 의해 신호를 받든 상관없이 염산분비 자체를 못하게 만드는 거다. 따라서 H2 inhibitor보다 강력하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위산분비억제효과가 있다. 오메프라졸omeprazole, 라베프라졸rabeprazole 등 각종 어쩌고저쩌고프라졸이라는 이름의 약들은 다 PPI들이다. 내시경 검사를 통해 식도염 진단을 받은 후 처방받아 먹었던 라베프라졸(파리에트 정)은 정말이지 효과가 좋았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PPI들은 복용 후 분자구조가 살짝 바뀐 후에야 효과를 갖게 되는데 이를 prodrug이라 한다. prodrug에 관해서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더 설명하기로 하고. 문제는 PPI가 실제 약효를 띠는 분자구조로 변하기 위해서는 산성환경이 필수적이라는 거다. 만약 PPI를 H2 inhibitor와 같은 여타의 위산억제제와 함께 복용하는 경우 위액이 충분히 산성을 띠지 않게 되므로 PPI가 약효를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PPI는 다른 위산억제제와 함께 복용해서는 안되고 다른 위산억제제가 함께 처방되는 경우에는 PPI를 먼저 먹고 30분 이상 경과된 후에 다른 위산억제제를 먹도록 해야한다.
위염 이야기를 하면서 헬리코박터를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 뭐시기 요구르트 광고 덕에 위염의 원인이 헬리코박터Helicobactor pylori라는 세균 때문이라는 건 이제 상식 수준이 되었다. 헬리코박터는 위장의 점막층 또는 위장내벽에 자리를 잡고 독성물질과 각종 분해효소를 내뿜어서 위벽세포를 손상시키고 염증을 일으키는 한편 스스로는 위산으로부터 보호하는 신기한 세균이다. 헬리코박터에 의한 위염으로 진단되는 경우에는 위에 언급한 위산억제제 뿐 아니라 항생제를 함께 처방해서 헬리코박터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PPI 중 하나+아목시실린amoxicillin(일종의 광범위 페니실린계 항생제)+클라리스로마이신clarithromycin(다른 종류의 항생제)를 함께 처방하는데 이를 triple therapy라고 한다. 항생제 내성이 생기지 않도록 항생제는 반드시 두 가지 이상을 처방하도록 한다. 만약 페니실린계 항생제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에는 아목시실린 대신 메트로니다졸(또 다른 종류의 항생제)을 쓴다.
헬리코박터가 위염 원인균이라는 사실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은 또다른 중요한 사실은 헬리코박터에 감염되었다고 모두 위염을 앓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헬리코박터균이 검출되었다고 반드시 항생제를 먹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위장점막을 물리적으로 보호해주는 수크랄페이트sucralfate(아루사루민 정)도 위염이나 식도염 치료제로 쓰인다. 위장 내 산성환경에서 젤을 형성해서 점막층을 보호한다.
그밖에 위장관운동을 촉진하는 약, 신경안정제, 진경제(위장관경련을 멎게 하는 약), 구토억제제 등도 쓰인다.
아참, 식도염 얘기를 빼먹었네.
사실 식도는 입과 위장 사이에 있는 음식물의 통로에 불과하기 때문에 위장과 달리 별다른 기능도 보호기제도 없다. 다만 강한 산성을 띠는 위장내용물이 식도를 손상시키지 못하도록 식도와 위장이 연결되는 위치에 괄약근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괄약근의 기능이 약하거나 과식을 했거나 등등의 이유로 이 장벽이 충분히 기능하지 못해서 위장내용물 또는 위액이 식도로 역류하게 되면 보호기제가 없는 식도가 손상을 입게 되어 식도염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역류성 식도염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이다. 요즘 (나를 포함해서) 엄청나게 흔한 병이 되었다고 한다. 치료방법은 대체로 위염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과식, 야식, 자극적인 음식 등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나는 맨날 늦게 먹고 많이 먹고 자극적인 음식을 사랑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덧붙이는 말
사실 위장약 이야기는 자체로 완결된 글이라고 생각하고 쓴 것이었는데 몇몇 독자들(어쩌면 모든 독자들 ㅎㅎ)에게서 피드백을 받아보니 몇가지 추가 설명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구차하게 덧붙이는 글을 쓰기로 했다.
먼저, 위염치료제는 없다. ‘효능 : 위염/위궤양의 증상완화 어쩌구’ 라고 써있는 약들은 결국 제산제에 다름아니다. 이미 위장 내에 존재하는 산을 중화시키는 것이든(겔포스 같은 알루미늄/마그네슘 염) 산을 뿜어내는 신호를 차단하는 것이든(라니티딘 같은 H2 inhibitor) 산을 뿜어내는 기능을 완전히 죽여버리는 것이든(오메프라졸, 라베프라졸 등등 PPI) 결국은 위산을 줄여서 무너진 위장 내의 균형 – aggressive vs. protective factors – 를 되찾아주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미 손상된 위점막은 그냥 알아서 회복하는 거다. 원래 각종 점막은 우리몸에서 가장 빠르게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가장 회복력이 빠른 조직이다. 과다한 산, 점막 생산을 방해하는 약물, 세포층을 파괴하는 세균 같은 방해물만 사라지면 웬만한 손상은 알아서 빠르게 복구한다. 물론 출혈이 일어날 정도로 손상이 심한 경우에는 레이저로 지지거나 봉합하는 수술이 필요할거다.
이번 기회에 사람들이 얼마나 약의 효능을 과대평가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위염치료제, 라고 하면 그 약물이 병소를 제거하거나 뭐 그런 식인 줄로 아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마데카솔을 바른다고 새살이 더 빠른 속도로 돋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진짜 세포재생을 돕는 그런 약물이 있다면, 그거 까딱하면 암을 유발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무서운 물질이 아닌가 -_-) 마데카솔에는 항균성분이 들어있어서 상처가 곪지 않고 정상적인 조직재생과정이 일어나도록 해주는 것일 뿐이다. 각종 진통제는 통증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통증을 못느끼게 해줄 뿐이다. 감기약이라는 것은 감기 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이 아니라 괴로운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약에 불과하다.
물론 진짜 근사한 메커니즘을 가진 약들도 있다. 어떤 질병의 진짜 원인을 화끈하게 없애주는 그런 약물들. 글리벡 정도면 화끈하다고 해줄 수 있겠다. (chronic myelogenous leukemia라는 특정 백혈병의 경우, ABL이라는 어떤 효소의 활성이 그 원인임이 밝혀졌다. 글리벡은 이 효소를 억제하는 약이다.) 내 생각에는 대부분의 항생제들도 근사한 메커니즘을 가진 약들에 속한다고 본다. 사람세포는 안죽이고 세균들만 죽이는 거잖아. (물론 죽어야할 세균과 안죽어도 될 세균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게까지 멋진 약은 아니다.)
작동 메커니즘이 근사하지 않다고 그 약이 무쓸모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감기 걸렸을 때 고열을 내려주고, 상처가 감염되지 않게 해주고, 우리 몸이 스스로 회복할 시간과 에너지를 벌어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약이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은 틀렸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고보니 위장약 얘기를 하면서 부작용에 대한 얘기를 하나도 안했네. 헐.
위장건강의 핵심은 균형이다. 다시말해 위산이 너무 많아도 문제지만 너무 적어도 문제다. 위액의 산도가 충분해야 펩시노겐이 펩신으로 전환되므로 위산분비가 너무 줄어들면 펩신이 충분해지지 않게 되어 소화불량이 생길 수 있다. 또는 위산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몸이 알아채고 그걸 보상하려고 오히려 산을 뿜어낼 수도 있다. 이럴 때 계속 제산제만 먹어대면 끝도없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 위장이 강력한 산성을 띠는 건 강력한 방어체계 중의 하나이다. 사실 인간은 웬만한 건 먹어도 괜찮다. 혈관으로 찔러넣으면 패혈증을 일으킬만한 더러운 것도 먹었을 때는 큰 해를 미치지 못한다. 강력한 위산이 웬만한 세균은 다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간신히 살아남아도 장으로 내려가면 거기 애초에 살고 계신 분들 등쌀에 못이겨 결국 쓸쓸히 사라져가게 된다.) 그러니까 제산제(H2 inhibitor나 PPI같은 거 다 포함해서)를 너무 오래, 많이 먹으면 이런 방어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설사병 같은 게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먹는 약들은 결국 간에서 대사되어 몸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므로 무슨 약이든 많이, 오래 먹으면 간에 부담을 주는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두자.
약을 먹는 것과 건강해지는 것에 관한 오해에 관해 사실 한동안 관심을 가졌던-실제로 요새 학계에서 핫하기도 한-것은 각종 건강보조제가 진짜 효과가 있는지 하는 것이다. 종합비타민제는 진짜 몸에 좋은가? 오메가쓰리는? 글루코사민은? 관련 논문들을 좀 세심하게 챙겨본 후에야 뭔가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거 같긴 하지만 일단 현재까지의 결론은 아니다, 이다. 확실한 것은 종합비타민제가 실제로 평균수명을 높인다든가 암발병률을 낮춘다든가하는 긍정적인 영향이 없다라거나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거. 비타민 A 보충제가 폐암 발병률을 꽤 화끈하게 높인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 연구하던 사람들도 꽤나 충격받았다고 한다. 고용량 종합비타민 가지고 하던 임상실험이 명백한 역효과 때문에 중간에 접혔다는 얘기도 있다. 종합비타민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증명하는 연구결과도 꽤 많지만 대부분이 제약회사들로부터 펀드를 받는 연구였음을 감안하면..으험험. 암튼 이 이야기는 내가 공부를 좀 더 해서 다음 기회에 제대로 다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