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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보충제에 관한 불편한 진실

이 포스트는 예전에 이글루스에 썼던 글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date of the original post: 2012-04-17)

미국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상당수가 각종 비타민 알약을 복용한다.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하루에 한 알, 센트륨 따위를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근데 그거, 진짜 건강에 도움이 되는걸까?

아니, 비타민이 몸에 좋은거야 상식 아닌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뭐시기뭐시기는 항암효과가 있고 항산화 작용이 탁월하여 노화를 예방하고 어쩌고저쩌고 이러저러하게우리 몸에 부족하기 쉬운 뭐시기뭐시기 등등을 잘 섭취해야된다, 등등 뭔진 잘 몰라도 암튼 몸에 좋은거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것만 같은 기사들이 주루룩 나온다.

이런 얘기들은 물론 다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의사가 수많은 폐암 환자들을 진료한 경험상 폐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담배를 피우는경우가 많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하자. 이 똘똘한 의사는 ‘혹시담배가 폐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합리적 의심에 이르게 된다. 폐암 환자 집단의 흡연자 비율과 폐암 환자가 아닌 집단의 흡연자 비율을 계산해서 비교해보니 폐암 환자 집단의경우에서 흡연자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난 경우, ‘흡연이 폐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논문이 하나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방법을 case control study 라고 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수많은 대장암 환자들을 관찰한 경험에 의해 대장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과일과 채소를 덜 먹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하자. 대장암 환자들한테 평소 식습관이 어떠한지를 꼬치꼬치 물어서과일 및 채소 섭취량을 계산한다. 대장암 환자가 아닌 사람들로부터도 비슷한 값을 구해서 비교해본다. 대장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과일과 채소를 훨씬 덜 먹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 과일과 채소를 덜 먹으면 대장암 발병 확률이 올라가는구나! 그 다음부터는 과일과 채소의 어떤 성분이 대장암 발병을 예방하는 것일까에 관한 각종 연구가 진행된다. 활성산소ROS(reactive oxygen species)가 DNA를 손상시켜서 노화를 일으키고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과일과 채소에 들어있는 비타민 E 등이 갖는 항산화 기능에 의해 활성산소를 제거해줘서 항암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등등.

여러가지 비타민이 항산화물질이라는 것은 밝혀진 사실이다. 과일과 채소에 비타민이 많이 들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장암에 덜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은, 과일과채소를 많이 먹는 사람이 대장암에 덜 걸리는 이유가 과일과 채소에 들어있는 특정 비타민 덕분인가 하는 점이다. 즉, 그 비타민을 알약으로 먹었을 때에도 항암 효과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는 실제로 비타민 알약이 항암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 이루어질 차례다. 사람들을 모아서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에게는 비타민 알약을 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똑같이 생겼지만 사실 비타민은 들어있지 않은 위약placebo을 준다. 상담을하는 의사도, 약을 먹는 사람도 자기가 먹는 것이 진짜 비타민인지 위약인지 알 수 없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추적관찰해서 두 그룹에서의 암 발병률을 비교한다. 이와 같은 실험을 intervention study ― randomized, double-blinded, placebo-controlled ― 라고 하는데 case control study와는 차원이 다른 증거능력을 갖는다. 만약 이러한 interventionstudy의 결과 비타민을 먹은 그룹이 위약을 먹은 그룹에 비해 현저히 낮은 암 발병률을 나타냈다면 ‘비타민이 암 발병률을 낮춘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하고 암 등 병에 덜 걸린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관찰되고 보고되어왔다. 의심할 여지 없이,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 효능은 과일과 채소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덕분일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의사/학자들은 사람들에게 비타민 보충제가 몸에 좋을 거라고 가르쳐왔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intervention study에서도 비타민과 항암효과 간의 인과관계에 쐐기를 박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90년대 후반부터 슬슬 intervention study의 결과들이 보고되기 시작했을 때 아마 다들 엄청 당황했을거다. 여러 대규모 연구 결과 비타민 알약들은 항암효과/심장질환예방효과/치매예방효과 등이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이제부터 주요한 intervention study 몇 개를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각각의 intervention study는 억지로 끼워맞춘 티가 역력한 야릇한 약자로 통칭된다. 이런 종류의 연구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박사님들이 참여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쏟아지는 만큼 하나의 연구에서 논문이 엄청 여러 개 나온다. 각 연구 밑에 써놓은 논문 제목은 본인을 위한 메모 같은 것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무시하시라.

CARET (the beta-CArotene and RetinolEfficacy Trial)

Effects of a combination of beta caroteneand vitamin A on lung cancer and cardiovascular disease, NEJM 1996.

비타민 A의 항산화 작용이 폐암을 예방할 것이라는 기존의 연구결과에 힘입어 폐암 위험군이라 할 수 있는 흡연자 및 석면에 노출되는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 9420명을 대상으로 비타민 A(베타 카로틴과 레티놀) 섭취가 폐암 발병률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결과는? 5년동안 고용량 비타민 A 알약을 먹은 사람은 위약을 먹은 사람에 비해 폐암에 걸릴 확률이 23%나높았다! 이와 같은 효과가 드러남에 따라 더 이상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것이 명백해지자 예상보다 이른 5년 단계에서 실험을 끝내게 되었다.

이 실험 결과가 나온 것이 벌써 1996년인데 나도 작년에 epidemiology 수업에서 배우기 전까지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깜놀한 박사님들은 이런 놀라운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현재까지 알려진 잠정 결론은, DNA를 손상시켜 암을 유발하는 걸로 알려졌던 활성산소ROS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암이 생길랑말랑하는 어떤 그런 미묘한 단계에서는 생길랑말랑하는 암을 억제하는 좋은 기능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 그러니까 흡연자나 석면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들은 이미 그러한 미묘한 단계에 있기 때문에 항산화 물질을 많이 먹으면 오히려 암이 잘 생긴다는 것.

PHS II (the Physicians’ Health Study II)

Vitamin E and C in the prevention ofcardiovascular disease in men, JAMA, 2008.

Vitamin E and C in the prevention ofprostate and total cancer in men, JAMA, 2009.

미국의 50세 이상 남자 의사들14641명을 대상으로 비타민 E와 비타민 C의효과를 연구한 것이다. 항산화 물질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비타민 E와 비타민 C를 저용량으로 섭취했을 때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률이 낮아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는 허무하게도, 비타민 E나 비타민 C 어느 것도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를 나타내지않았다(평균 8년 복용). 항암효과도 없었고, 사망률에도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에서 한가지 특이할 점은 비타민 E, C 효과 연구와 별개로 시판되는 센트륨 알약도 테스트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결과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흥미진진, 결과가 기대된다!

*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연구는 이전에 이미 행해진 유사한 연구의 후속편 같은 거랄까. 이전 연구인 PHS I는 역시 미국의 50세 이상 남자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저용량의 아스피린을 장기간 복용하는 것이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한다는사실을 확인한 나름 유명한 연구였다. 실제로 PHS I에참여했던 의사들 중 일부는 PHS II에도 참여했다.

SELECT (the SELenium and vitamin E Cancerprevention Trial)

Effect of selenium and vitamin E on risk ofprostate cancer and other cancers, JAMA, 2009.

Vitamin E and the risk of prostate cancer:the selenium and vitamin E cancer trial, JAMA, 2011.

대체로 건강한 55세 이상 남자 35533명을 대상으로 고용량의 셀레늄과 비타민 E의 항암효과, 특히 전립선암 발병을 억제하는지를 연구했다. 원래는 12년까지 계획되어 있었으나 평균 5년 반 복용 후 중간 결과를 분석한결과 전립선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전혀 나타날 기미가 없어서 일찌감치 복용을 중단시켰다. 다만 추적 조사는 계속 이루어져서 2년 후 다시 결과를 분석해봤더니 비타민 E를복용한 사람은 위약을 복용한 사람에 비해 전립선암 발병률이 오히려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적조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SU.VI.MAX (the SUpplémentation en VItamines et Minéraux AntioXydants)

Antioxidant vitamin and mineralsupplementation and prostate cancer prevention in the SU.VI.MAX trial,Int.J.Cancer, 2005.

아.. 프랑스에서 진행된 연구라서 제목이 불어다. 베끼기도 힘들다.

비교적 건강한 중년 남녀 13017명을 대상으로 종합비타민제(비타민 C, E, 베타 카로틴, 셀레늄, 아연 포함)의 전립선암 예방효과를 연구했다. 평균 8년 복용 후 전립선암 발병률을 계산해 비교했다. 실험을 시작할 당시 전립선암 위험인자 수치가 낮았던 그룹에서는 종합비타민제 복용이 전립선암 발병을 억제하는것으로 나타난 반면 실험을 시작할 당시 전립선암 위험인자 수치가 높았던 그룹에서는 종합비타민제를 먹은 사람이 위약을 먹은 사람보다 오히려 전립선암 발병률이 높았다.

Women’s Health Initiative

Calcium plus vitamin D supplementation andthe risk of colorectal cancer, NEJM, 2006.

폐경기 여성 36282명 중 절반에게는 권장량의 칼슘과 비타민 D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위약을 7년간먹도록 한 결과, 대장암 발병률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 실험에 사용한 비타민 알약의 용량에 대해서는 일일권장량에 비해두 배 이상 높은 경우 고용량, 일일권장량보다 낮은 경우 저용량으로 대략 표시했다.

이것들 말고 또 무슨 intervention study가 현재 진행중인지는 잘 모르겠다. Intervention study 외의 다른 방법으로 된 연구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연구들은 대부분 비타민과 미네랄이 질병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결론을 내고 있는 것들이다. 또한 그런 연구들의 대부분이 비타민 보충제가 아니라 음식물로부터 섭취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바탕으로 분석한 것들이고.

이 글을 읽고, 불규칙한 식생활 등 건강관리에 소홀했다는 죄책감을 비타민 알약 따위로 손쉽게 벗어나보고자 했던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 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