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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AIDs

이 포스트는 예전에 이글루스에 썼던 글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date of the original post: 2013-02-06)

진통제는 크게 마약성 진통제와 비마약성 진통제로 나뉜다. 마약성 진통제란 모르핀으로 대표되는데 작용 원리, 사용법, 주의사항 등이 비마약성 진통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당장 딱히 재밌는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관계로 일단 미뤄두겠다. 비마약성 진통제는 다시 NSAIDs(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 엔스에이드라고 발음하면 된다)와 그 외의 비마약성 진통제로 나뉘는데, 지난번에 설명했던 아스피린이 대표적인 NSAID이다. 아스피린 외에도 이부프로펜ibuprofen같은 흔한 소염진통제가 NSAID에 속한다. NSAID가 아닌 비마약성 진통제는 타이레놀이 대표적이다.

타이레놀 포장이나 설명서에 보면 성분명이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보다 파라세타몰paracetamol이라는 이름이 훨씬 보편적으로 쓰인다. 나는 아세트아미노펜 밖에 몰랐기 때문에 학교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타이레놀이랑 완전 비슷한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같은 건 줄은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약물명을 나만 모르는 것같은 기분에 좌절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그거. 쳇.

NSAIDs고 타이레놀이고 간에 작용 원리는 거의 똑같다. COX를 억제해서 프로스타글란딘 합성을 못하게 하는 거다. (자세한 내용은 아스피린 이야기를 참조하시라.) 타이레놀이 NSAID가 아닌 이유는 소염작용anti-inflammatory activity이 없기 때문이다. 타이레놀도 아스피린이랑 마찬가지로 염증반응을 매개하는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 합성을 못하게 하는 약인데 왜 아스피린은 소염작용이 있고 타이레놀은 없는걸까?

지난번에 설명했듯이 프로스타글란딘은 수명이 아주 짧아서 합성된 곳 근처에서 작용하고 곧 분해된다. 우리 몸 어딘가에 염증반응이 있다는 것은 손상된 조직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이 합성돼서 염증반응을 일으키라고 신호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NSAID가 소염작용을 하려면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중인 그 손상된 조직에 접근해야만 한다. 실제로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 같은 NSAID는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중인 조직으로 가서 쌓이기 때문에 소염작용이 나타나는 것이고 타이레놀은 그런 식으로 염증조직에 축적되는 성질이 없어서 소염작용은 없고 해열 및 진통작용만 갖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약물의 화학구조를 들여다봐야한다.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의 화학구조를 잘 살펴보면 카르복실기COOH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타이레놀은 이런 구조가 없다.

빨간 동그라미처럼 생긴 화학구조를 카르복실기라고 부른다.
카르복실기를 간단히 그리면 COOH가 된다.
맨 오른쪽의 타이레놀은 카르복실기를 갖지 않는다.

어떤 약물이 카르복실기를 갖는다는 게 무슨 의미냐면, 주변환경의 pH에 따라 존재하는 형태가 달라진다는 거다. 카르복실기에 수소이온H+은 붙어있을 수도 있고 떨어져나갈 수도 있는데 이게 주변환경의 pH에 따라 결정된다. 산성환경에서는 수소이온이 붙은 COOH 형태로 주로 존재하고 알칼리/중성환경에서는 수소이온이 떨어진 COO 형태로 주로 존재한다.

이부프로펜을 예로 들어 카르복실기의 변화를 그려봤다.
산성환경(낮은 pH)에서는 주로 왼쪽의 형태로 존재하고
알칼리/중성환경(높은 pH)에서는 주로 오른쪽의 형태로 존재한다.

COOH 형태로 존재하는 것과 COO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가져오는 차이는, COO가 COOH보다 물에 훨씬 더 잘 녹는다는 것이다. (원래 +든 -든 전하를 띠는 물질은 물에 잘 녹는 법이다. 물에 엄청 잘 녹는 소금이 Na+랑 Cl로 이루어진다는 걸 떠올려보시길.)

여기에 염증조직은 원래 정상조직에 비해 pH가 낮다는 사실 하나를 더하면 이제 답이 나온다. 답이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자, 다시 찬찬히 살펴보자. 알약을 먹으면 결국 약물이 녹아나와서 혈액을 따라 돌게 되는데, 혈액도 90% 이상이 물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이나 물에 녹은 상태로 돌아다니면서 작용을 하는 셈이다. 혈액의 pH는 7.4 정도로 약한 알칼리 내지는 중성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아스피린은 혈액에서 대부분 COO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렇게 혈액을 따라 온몸을 돌다가 혈액에 비해 산성인 염증조직을 만나게 되면 COO의 일부가 COOH로 바뀌어 물에 잘 안녹게 되어 거기에 가라앉게 된다. 이런식으로 카르복실기를 갖는 NSAID는 염증조직에 축적되기 때문에 강한 소염작용을 나타내는 반면 카르복실기가 없는 타이레놀은 염증조직에 축적될 일이 없으므로 소염작용이 거의 없는 것이다.

사실 NSAID는 작용 원리의 측면에서 앞서 설명한 아스피린이랑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데도 굳이 이렇게 따로 길게 설명한 것은, 약물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분포하느냐가 그 효과를 크게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흔히 ADME라고 요약하는, 약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주제 – 흡수Absorption, 분포Distribution, 대사Metabolism, 배출Excretion – 중 두번째에 관한 얘기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쓰고나니 맨 위의 분류표를 그리다가 생각난 아스피린의 특수성을 언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사실 아스피린은 NSAID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다른 NSAID와는 사뭇 다른 점들이 많다. 신약개발의 역사에서 중요하다는 것, 심장병 예방에도 쓰인다는 것 외에도 COX를 비가역적으로 억제한다는 점에서 특히 다르다. 비가역적인 작용이라는 건 COX를 영원히 망가뜨린다는 뜻이다. 다른 NSAID는 COX에 붙어있는 동안에만 프로스타글란딘 합성을 방해하다가 시간이 지나 떨어져나온 후에는 COX가 제 기능을 회복하는데 비해 아스피린은 일단 한번 COX에 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고 효소 자체를 변성시키기 때문에 그 COX는 그 수명을 다할 때까지 프로스타글란딘 합성을 할 수 없는 무쓸모한 신세가 된다.

혈소판에서는 이 차이가 만들어내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왜냐하면 혈소판에는 핵이 없어서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세포에서는 꾸준히 새로운 단백질을 생산하기 때문에 아스피린이 COX를 망가뜨리더라도 언젠가는 멀쩡한 COX가 새로 만들어져서 그 세포가 필요로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회복할 수가 있는데, 혈소판이라는 건 한번 만들어지면 그걸로 끝인 일회용 세포라서 이런 유지보수 기능이 아예 없다. 따라서 아스피린이 혈소판의 COX를 망가뜨리면, 골수에서 새로운 혈소판이 만들어져서 낡은 혈소판을 대체할 때까지 망가진 혈소판 기능이 회복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수술 받기 한참 전부터 아스피린 복용을 삼가야하는 이유이자, 적은 용량으로도 심장병 예방에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

진짜로,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