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트는 예전에 이글루스에 썼던 글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date of the original post: 2014-01-11)
그동안 간간이 샴푸에 들어있는 계면활성제가 어쩌구 하는 얘기를 들어왔었다.
대충 들어봐도 뭔가 과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번에 놀러갔다가 다시 화제에 올라 이번에야말로 함 제대로 디벼보기로 했다.
일단 구글에 ‘계면활성제 독성’ ‘계면활성제 없는 샴푸’ 등으로 검색했을 때 주루룩 나오는 기사를 보니 2012년 1월에 순천향대학교 농약중독연구소 홍세용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기사로 인용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농약보다 무서운 계면활성제 독성’ 뭐 이런 식의 아주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해당 논문을 검색해서 읽어봤다. 내용을 대강 요약해보자면,
특정 농약을 먹고 자살기도를 한 환자들을 조사해보니 이러저러한 증상을 겪었는데, 해당 제초제 성분 자체는 인체 독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므로 제초제 성분 자체가 아니라 해당 농약에 포함된 다른 물질들(여러가지 계면활성제가 들어있음)이 인체에 해로운 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농약보다 무서운 계면활성제’ 운운하면서 사람들한테 겁을 주고 있는 거였다. 아놔.
이 논문에서 내가 발견한 의미는 ‘인체독성이 매우 약한 것으로 알려진 제초제 성분이라 하더라도 실제 농약제제에는 제초제 뿐 아니라 다른 해로운 성분이 들어있으므로 음독시 인체에 해로운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독환자들의 적절한 치료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이지, 샴푸에 들어있는 계면활성제가 농약보다 위험하다는 식으로 확대해석을 해서는 안된다.
해당 논문의 사례들에서 음독한 농약에 포함된 계면활성제는 샴푸나 화장품 등에 들어있는 계면활성제와 다른 물질이라는 것은 차치하고, 먹는 거랑 바르는 거는 완전 다르다는 사실을 다들 좀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폼클렌저라도 먹으면 안되는 거잖아? 보다 정확하게는 바르는 거랑 씻어내는 것도 완전 다르다. 폼클렌저를 얼굴에 ‘바르는’ 건 아니잖아?
검색을 해보니 사람들이 호들갑을 떠는 합성계면활성제 성분 이름들이 몇 개 나왔다.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SLES, sodium lauryl ether sulfate), 디에탄올아민(DEA, diethanolamine), 트리에탄올아민(TEA, triethanolamine), 파라벤(paraben) 등등.
각 성분의 안전성에 관한 리포트를 찾아봤다. CIR(cosmetic ingredient review)라고 FDA에서 지원을 받는 독립적인 단체에서 각종 화장품 첨가물질에 관한 안전성에 관한 논문을 리뷰해서 발표하는데, 위에 언급한 모든 성분에 관해서 화장품으로 사용하는데 부적합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밖에 기사에서 언급된 바 있는 다른 논문도 하나 찾아봤다. 임산부에게 사용시 DEA가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임신한 쥐의 피부에 DEA를 11일간 발랐더니 쥐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도 분명히 사람이 로션으로 발랐을 때 흡수되는 양은 쥐에서 실험한 농도의 100 내지 200 분의 일 정도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하도록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바르는 거랑 씻어내는 건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실제 샴푸에 사용되는 건 DEA가 아니라 DEA를 이용해서 만드는 cocamide DEA, oleamide DEA와 같은 다른 물질이다. 다만 이런 물질의 합성 과정에서 불순물로 DEA가 섞이기 마련이고 피부에서 cocamide DEA 등이 DEA로 분해되기도 하는 등 DEA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던 제품들의 성분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특히나 이런식으로 공포를 과장함으로써 ‘계면활성제 없는 샴푸’등을 비싸게 팔아보려는 화장품 회사의 상술에 놀아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한다.
‘계면활성제 없는 샴푸’라는 말은 자체로 거짓이다. 계면활성제야말로 샴푸를 샴푸로 만들어주는 핵심이다. 이거 없으면 때가 안빠진다고. ‘합성계면활성제 없는 샴푸’라고 하면 그나마 좀 진실에 가깝겠지. 보다 엄밀하게는 위에 언급한 SLES 등이 안들어있는 샴푸라는 뜻에 불과하다. SLES 대신에 글루코사이드 계열의 다른 계면활성제를 쓴다고 한다. 물론, ‘천연성분’을 사용하는 제품이라고 광고하겠지. 하지만 뭐가 ‘천연’이란 말인가? SLES도 코코넛오일을 가지고 만드는데 그럼 이것도 천연성분 아닌가?
소위 ‘천연샴푸’와 평범한 샴푸의 진짜 차이는 평범한 샴푸는 때가 쏙쏙 잘 빠지고 값도 저렴한 SLES같은 계면활성제를 쓰는 반면 천연샴푸는 세정력은 좀 떨어지지만 피부에 자극이 덜한 다른 계면활성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두피에 트러블이 있는 사람이 세정력을 포기하고 비싸더라도 순한 샴푸를 쓰겠다면 말릴 이유는 전혀 없다. 실제로 비듬이나 가려움증 등 두피 트러블이 샴푸 바꿨더니 좋아졌다는 사람 많잖아. 하지만 계면활성제 때문에 암에 걸릴까 걱정이 돼서 괜히 비싼 샴푸에 헛돈 쓰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