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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통의 어려움

이 포스트는 예전에 이글루스에 썼던 글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date of the original post: 2017-01-11)

벌써 한 달도 더 된 기사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작정하고 꼼꼼히 찾아봤다.

“제왕절개 분만 증가로 좁은 골반 여성 늘어나…진화적 의미” 라는 뉴시스 기사인데, 최근 PNAS에 출판된 논문을 소개하는 BBC 기사를 인용해 보도한 거였다. 좁은 골반을 가진 여성은 100년 전이라면 출산 과정에서 살아남기 어려웠겠지만 현재는 제왕절개라는 기술 덕분에 안전한 분만을 할 수 있게 되어 좁은 골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이 기사에 댓글로, 트위터에서 이 기사에 분노하는 여자들이 많았다는 거였다. 제왕절개 덕분에 산모가 목숨을 건지는 게 나쁘다는 거냐? 뭐 이런 식으로. 나는 이 기사에서 분노할 포인트를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실제로 제왕절개 분만은 증가 추세고, 이게 역으로 제왕절개 분만을 필요로하는 경우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인간 진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인데, 이걸 많은 사람들이 제왕절개 분만을 비판하는 기사로 읽는 것이었다.

일단 뉴시스가 왜곡한 부분이 있는지 BBC 기사와 비교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순서가 달라진다거나 생략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대로 베낀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BBC 기사가 논문 내용을 왜곡한 것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해당 논문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대중의 입맛에 맞게 가공하긴 했지만 논문 저자들이 동의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원래 논문은 이론생물학적/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산모 골반에 비해 아기 머리가 너무 큰 경우가 왜 이렇게 많은가?” 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였다. 아기 머리가 너무 큰 경우 혹은 산도가 너무 좁은 경우 분만 과정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선택의 원리 대로라면 이런 유전자는 점차 도태되어야 하는데 인간의 경우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이런 경우가 훨씬 흔하다는 것이 진화생물학의 큰 궁금증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수학적인 모델을 통해서 이 궁금증을 해결해보려고 했다. 결론은 아기 머리 크기라든가 골반 크기 같은 값은 정규분포를 따르는데 비해 산도 넓이 대비 아기 머리 크기에 따른 생물학적 이득이라는 값은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아기 머리가 클수록 (혹은 아기 몸집이 클수록) 생후 아기의 생존율은 올라가기 때문에 그래프를 그려보면 상승곡선이 나타난다. 즉, 아기 머리는 클수록 유리하다. 다만 이 상승곡선은 무한히 뻗어갈 수 없다. 엄마 골반에 비해 너무 커져버리면 분만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래프는 상승하다가 꺾여서 떨어지는 ‘절벽’ 형태가 된다.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를 하다보면 실제 아기 머리 크기와 골반 크기 등의 값은 ‘절벽’의 제일 높은 지점 (가장 유리한 지점) 에 가까운 평균값을 갖게 되는데, 정규분포를 따른다면 평균값보다 큰 경우가 늘 발생하므로 “산모 골반에 비해 아기 머리가 너무 큰 경우”는 늘 일정정도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여기까지 제왕절개 도입 이전을 가정한 수학 모델을 설명한 후에, 이 모델 하에서 제왕절개를 도입해보면 어떻게 되는지를 예측해본 결과를 덧붙였다. 제왕절개가 도입된 이래로 “산모 골반에 비해 아기 머리가 너무 큰 경우”가 20%까지 증가했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논문 내용을 이해한 다음 기사를 다시 읽어봤다.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문제를 잘 풀었고, 문제의 특성 상 제왕절개 도입의 영향을 고찰한 것은 적절해보인다. 진화생물학이라는 동떨어진 분야의 연구에 사회학적 함의를 담는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기사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학술논문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적절했다고 보인다. 진화생물학적인 디테일은 빼고, 공중보건에 함의가 큰 마지막 내용을 강조해서 소개했다. “의료적 개입을 비판하자는 뜻이 아니라 진화적 영향을 주목해야한다” 는 저자의 발언도 인용했다. 뉴시스는 제목을 자극적으로 바꾸면서 왜곡한 바가 있긴 하다. BBC 기사 제목은 “Caesarean births ‘affecting human evolution’ (제왕절개가 인간 진화를 바꾼다)” 인데 뉴시스에서는 이걸 골반의 문제로 축소해버렸다. 여성독자들이 분노한 게 제목 때문이었던 걸까?
소개된 논문이 제왕절개 분만을 비판하고 자연주의 출산을 옹호하는 정신나간 주장에 동원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분노한 댓글도 이런 오독의 가능성과 연결된걸까? 연구자라면 자기 연구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늘 염두에 둬야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연구자가 어디까지 책임져야하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냥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기사를 대충 읽고 과민반응한 걸까?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공중보건의 함의를 갖는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거지?

과학 소통이라는 게 너무 요원한 일로 느껴져서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