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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잔 음주는 몸에 좋은가

이 포스트는 예전에 이글루스에 썼던 글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date of the original post: 2017-10-19)

“한국인 소주 1~2잔에도 암 위험” 이라는 기사를 봤다.
조금 검색해보니까 역시나 “마시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소주 한두 잔 효과 혼란” 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불과 2년 전에 “하루 3~4잔 이내 소주는 뇌졸중 예방에 좋다” 는 기사도 난 적이 있기 때문이렷다.

적당한 음주가 몸에 좋다는 게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는 가벼운 음주를 하는 사람이 사망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는 1981년에도 발표된 바 있고 (Marmot et al Lancet 1981), 그 이후로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엄청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술 전혀 안 함 -> 가벼운 음주 -> 과음 의 방향으로 음주 습관에 따라 사망률 표를 그려보면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이런 상관관계를 J-shape (또는 U-shape)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사망률이라는 걸 사망원인에 따라서 좀 더 자세하게 분류를 해보면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과 기타 사망률에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술을 아예 안 마시는 사람에 비해 가벼운 음주를 하는 사람이 사망률이 떨어지는 경우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 뿐이다. 심혈관계 질환은 흔히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말한다.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제외하면 가장 흔히 남는 사망원인은 암이다. 음주가 암발병률 또는 암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은 심혈관계 질환과는 달리 J-shape이 아니라는 연구결과도 꽤 많다. 그렇기 때문에 J-shape인 음주와 심혈관질환 사망률에 대해 배울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이 “하루 한 두 잔 음주가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는 좋을 수 있지만 암발병률을 높일 수 있으므로, 원래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 일부러 건강을 위해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위 기사에서 언급한 2년 전 논문(Lee SJ et al Neurology 2015)은 뇌졸중 환자 1848명과 건강한 사람 3589명을 대상으로 음주 습관을 조사한 결과 건강한 사람에 비해 뇌졸중 환자는 가벼운 음주를 하는 사람인 경우가 적다는 걸 보인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가벼운 음주를 하는 경우 뇌졸중 확률이 낮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방식의 연구를 case-control study라고 한다. 질병이 있는 사람을 조사 대상으로 삼아서 건강한 사람과 비교하는 연구라는 뜻이다.

최근 기사에 소개된 연구(Choi YJ PLoS ONE 2017)는 이와 달리 연구 시작 시점에 건강했던 사람 2000만명(2000명 아님)을 조사 대상으로 해서 이후로 5년간 음주 습관과 암발병 여부를 조사한 것이다. 이런 연구를 cohort study라고 한다. case-control study의 경우 이미 병이 난 사람한테 과거의 음주 습관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답변이 정확하지 않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질병을 가진 사람과 비교 대상이 되는 건강한 사람이 사실은 비교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집단일 가능성도 있다. x병원에서 xx질환으로 치료받은 사람들(case)을 연구할 때 x병원에 건강검진차 방문한 건강한 사람들(control)과 비교한다고 했을때 알고보면 control 집단은 되게 부유한 사람들이고 case는 그렇지 않다면 적절한 비교라 할 수 없다. cohort study는 애초에 건강했던 집단을 추적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case-control study에 비해 cohort study의 증거능력을 더 높은 것으로 본다. 그리고 조사 대상이 무려 2000만명.. 이건 뭐 대한민국 성인을 그냥 통째로 연구한 거다. 그런데 그 결과 하루 소주 한두 잔만 마셔도 식도암 발병률이 50% 높아진다는 결론이 나온 거고.

두 논문 모두 연구 방법이나 해석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두 논문의 결과가 서로 모순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두 논문 모두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음주와 관련한 기존의 연구는 대부분 백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알콜분해효소 유전자 분포가 백인과 다른 한국인에게도 적용될 지 확신하기 어려웠는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나온 것이다. 또한 기존 연구들에서 음주라 함은 주로 와인이나 맥주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비해 한국인은 소주나 막걸리를 많이 마시기 때문에도 결과가 달라질 여지가 있었다. 첫번째 논문은 역시 한국인에게서도 심혈관계 질환에 대해서는 가벼운 음주가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 두번째 논문은 가벼운 음주라도 식도암 발병률을 크게 올린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했다.

사실 가이드라인 차원에서 크게 바뀔 것은 없다. 원래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 일부러 건강을 위해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 하루 한두 잔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식도암 발병률을 낮추기 위해 술을 끊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과음하는 사람이라면? 심혈관계 질환이냐 암이냐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과음은 건강에 좋지 않음. 그러나 누가 그걸 정말 몰라서 과음을 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