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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 이야기

이 포스트는 예전에 이글루스에 썼던 글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date of the original post: 2013-01-28)

아스피린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참으로 엄청난 약이다. 정말 흔하게 먹는 약이기도 하고, 정말 오래된 약이기도 하고, 정말 간단한 화학구조로 이루어진 약이기도 하고, 작용 원리가 정말 잘 알려진 약이기도 하고, 신약개발의 교과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아스피린의 역사는 무려 기원전 400년 즈음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히포크라테스(그렇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로 그분)께서 통증 완화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물론 히포크라테스 옹께서 사용하셨던 것은 바이엘 아스피린이 아니라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이었다. 이렇듯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면서도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을 진통제로 사용해왔다. 19세기 들어서 버드나무 껍질에서 진통효과를 내는 살리실산salicylic acid을 정제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이 살리실산을 분말 형태로 사용했다. 그러나 살리실산은 맛이 참으로 고약한데다 귀울림이 있고 속이 메슥거리는 등 부작용이 심해서 문제가 많았다. 1899년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Bayer에서 일하던 Hoffman이라는 독일 화학자가 살리실산을 약간 변형시켜서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으로 만들면 효과는 유지하면서 부작용은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바이엘 아스피린의 시작이다.

왼쪽이 살리실산, 오른쪽이 아스피린이다.

이와 같은 과정 – 오랜 세월에 걸쳐 어떤 동/식물 추출물이 약효가 있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알려짐  -> 효능을 내는 물질을 정제 -> 화학적 변형을 통해 효과는 키우고 부작용은 줄여서 약으로서 가치가 있는 물질을 찾아냄 -> 대량생산 및 상업화 – 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신약개발의 기법이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스피린의 작용 원리는 잘 몰랐다. 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워낙 오랫동안 사용해와서 효과가 있는 줄 아니까 그냥 쓰는 거다. 아스피린 개발 당시와는 비교도 안되게 정교한 의약품 허가 시스템을 갖춘 오늘날에도 의약품 허가요건에 원리 따위는 들어있지 않다. 효과가 있다는 것 (더하기 안전하다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 1971년이 되어서야 아스피린이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물질의 합성을 저해함으로써 그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업적으로 Vane이라는 영국의 약리학자는 무려 노벨상도 받았다.
아스피린의 작용 원리를 조금 자세하게 알아보자.
아스피린의 타겟은 COX(CycloOXygenase)라는 효소이다. 이 효소는 프로스타글란딘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COX에 의해 합성되는 이 프로스타글란딘은 염증과 발열, 통증을 매개하는 물질이다. 아스피린이 COX에 붙어서 프로스타글란딘을 만들지 못하도록하면 염증, 발열, 통증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스피린은 염증반응을 줄여주는 소염제, 열을 내리게 하는 해열제, 통증을 줄여주는 진통제가 된다.

COX에 의해 아라키돈산arachidonic acid이라는 물질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스피린이 소염진통제가 아니라 심장병 예방을 위한 약으로 더 유명해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도대체 진통제랑 심장병이 무슨 관계? 이걸 이해해 보려면 먼저 프로스타글란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야될 필요가 있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우리 몸 거의 모든 곳에서 만들어지며, 다양한 생리작용을 매개하는 일종의 호르몬 같은 물질이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다른 호르몬들과는 달리 혈액을 따라 온몸을 돌면서 작용할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곳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그 기능을 수행한 후 곧 분해되어버리므로 local hormone이라고 부른다. 통칭해서 프로스타글란딘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을 아주 다양한 종류가 있고 그 기능도 조금씩 다르다. 물론 이걸 다 알 필요는 전혀 없다. 사실 나도 잘 모르고;; 어디에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는 점을 이해하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서 위장내벽에서 만들어지는 프로스타글란딘은 위장을 보호하는 점액 생산을 촉진하고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이 바로 아스피린이 속쓰림을 유발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혈소판에서 만들어지는 프로스타글란딘은 어떨까? 저 아득한 학창시절 그 언젠가 배웠을 것이 틀림없는 “혈소판의 기능: 혈액 응고” 가 기억나시는지? 그렇다. 혈소판 내에서 만들어지는 프로스타글란딘은 혈액 응고를 돕는 기능을 한다. 이것이 바로 수술을 앞둔 환자가 아스피린을 복용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아스피린에 의해 프로스타글란딘 생성이 억제되면 혈소판의 혈액 응고 기능이 떨어지므로 지혈이 잘 안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어라, 혈액 응고가 잘 안되게 한다고? 이거 좋은 거 아녀? 그렇다. 요러한 생각으로 아스피린을 심장병 예방을 위해 처방하는 거다. 심근경색을 한 번 겪었거나 심근경색의 위험이 있는 협심증 환자 같은 경우 저용량 아스피린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심근경색 위험을 낮춘다는 것이 밝혀졌다. 소염진통제로 먹는 경우 500~1500 mg (알약으로 한알에서 세알 정도)를 길어봤자 며칠 먹는 것과는 달리 100 mg 정도를 매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다. 물론, 소염진통제 알약을 잘라서 먹는 것이 아니고 저용량 알약이 따로 있다. 잘라 먹어도 되게끔 금이 가있는 경우가 아니면 알약은 잘라 먹으면 안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아스피린은 신약개발의 교과서적인 사례가 된다. 잘 알려진 부작용으로부터 새로운 적응증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약개발이 이루어지게 되는 경우, 예전부터 이미 써오던 약이므로 이미 부작용 등이 잘 알려져있고 그 안전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며 생산이 쉽다는 점 등등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에 비해 엄청난 장점이 있다. 다 죽어가는 (또는 이미 죽어버린) 특허/상표를 오늘에 되살리는 것은 덤.
신약개발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아스피린 얘기를 하면서 선택적 COX2 억제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로스타글란딘을 만드는 COX라는 효소를 억제함으로써 아스피린의 효능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했다. 그런데 COX가 한 종류가 아니고 COX1과 COX2 두 종류이며, 위장장애 및 출혈성향 증가와 같은 아스피린의 주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COX1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COX1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COX2만 억제하는 약을 찾아나섰고, 결국 찾아냈다.

아스피린은 COX의 주머니(바로 여기에서 아라키돈산이 프로스타글란딘으로 바뀐다. 이와 같이 모든 효소는 각자의 기능에 핵심적인 주머니를 갖는데 이를 active site라고 한다)에 붙어서 COX의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서 그 효과를 나타내는데 COX1과 COX2는 이 주머니가 조금 다르게 생겼다. COX2의 주머니에만 움푹 패인 곳이 있다. 이런 거, 신약개발에 참여하는 화학자한테는 완전 기쁜 소식인 거다. 아스피린을 좀 변형시켜서 요 움푹 패인 곳에 쏙 들어가도록 만들면, COX1의 주머니에는 안들어가고 COX2의 주머니에만 쏙 들어가게 된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약들이 바로 celecoxib, rofecoxib 등의 선택적 COX2 억제제들이다.

선택적 COX2 억제제들. 
빨간색 동그라미 부분이 COX2 active site의 움푹 패인 곳에 쏙 들어간다.

선택적 COX2 억제제 중에서도 제약 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녀석이 바로 rofecoxib이다. 머크Merck에서 1999년 FDA 승인을 받은 후 Vioxx라는 이름으로 2003년까지 25억 달러어치를 팔아치운, 엄청난 약이었다. 그러나 이 약은 심근경색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서 2004년 승인이 취소되고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약의 부작용으로 6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머크사는 정말 그 부작용을 몰랐을까, 등등 음모론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은 왜 그런 부작용이 생겼을까 하는 재미없는 얘기만 하기로 한다.

문제는 혈관 내벽에서 혈전 생성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을 만들어내는 COX가 COX1이 아니라 COX2라는 데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COX2를 억제하면 혈전이 생기기 쉬워지게 된다.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혈전이 생겨서 심장근육에 피가 돌지 않아 조직이 괴사하는 것이 심근경색이다. 아스피린이 혈소판의 혈액 응고 작용을 억제한다는 얘기는 앞에서 했다. 이때 관여하는 것은 COX1이다. COX1과 COX2의 기능이 상반되는 셈이다. 아스피린과 같은 비선택적 COX 억제제는 COX1과 COX2를 동시에 억제하니까 상반된 두 효과가 어느정도 상쇄되는 셈이다. 그런데 rofecoxib은 순전히 COX2만 억제하니까 강력한 혈전 생성 효과가 나타나는 거라고 하겠다.

그러나 rofecoxib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celecoxib과 같은 다른 COX2 억제제들은 그와 같은 큰 부작용이 보고된 바 없이 아직도 잘 팔리고 있는 걸 보면 이렇게 간단히 설명할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스피린의 경우처럼 어떤 약의 원리가 잘 알려진 경우에 그 지식을 활용해서 더 나은 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경우에 그렇게 신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알고보면 그것이 더 나은 약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인간의 몸은 복잡하니까요.
아스피린은 제약의 역사에서 보면 완전 멋진 약이고, 상대적으로 꽤 안전한 약이기도 하지만 아주 드물게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레이 신드롬Reye’s syndrome이라고 들어보셨는지? 어린이들에서만 나타나는 아주 드문 질환인데 치사율이 높은 무서운 병이다. 아직까지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바이러스성 질환(수두나 독감 등)을 앓는 어린이들이 아스피린을 복용한 경우에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함부로 아스피린을 먹여서는 안된다는 얘기.

아스피린이 천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저어기 위에 두번째 그림에 보면 아라키돈산에서 프로스타글란딘 외에도 류코트리엔leukotrienes이라는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면역 반응 특히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아스피린 때문에 COX가 제 구실을 못하면 아라키돈산이 남아돌게 되어 류코트리엔을 과다 생산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leukotriene shift라고 한다. 이렇게 왕창 생산된 류코트리엔이 과도한 면역반응으르 일으켜서 천식발작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천식환자 또는 위험군에 속하는 경우에는 투약에 유의해야한다.